201124 킥보드 쿠팡이츠 배달 2일차
어제 후술할 사고로 인해 충격을 많이 받아서 오늘 어제의 배달일지를 쓴다.
선요약
1. 11400원 벌고 장갑 한쪽 분실, 경미한 부상
2. 전동킥보드 배달을 할바에야 오토바이로
3. 킥보드 존나 허술하다
나는 아직도 조금 배달하는것이 무서웠다.
2번의 배달 모두 순탄치 않았기 때문이다.
배달하는것이 탐탁치 않아서 무의식적으로 자꾸 이유를 만들어냈다.
꾀병부리는 초등학생처럼 말이다.
어쩄든 나가야만 했고, 나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배달을 익숙하게 만들 발판이 필요했다.
마치 피보나치 수열처럼 적응도를 쌓아나가 슬로우 스타터로 출발해 멀리 나가는것이 나의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나는 반경 2km라는 픽업조건을 고려해 역과 역 사이, 그리고 차가 많이 없는 길을 끼고있는 장소를 찾아서 대기했다.
30분? 1시간? 아무튼 정말 오래 기다렸다.
생각해보니 첫날은 일요일이었고 초심자의 행운도 따라줘서 빠르게 배달이 잡힌게 아닌가 싶었다.
운명의 장난인가? 에이 씨발,.. 이런 생각으로 집에 가려던 찰나 콜이 하나 떴다.
구운 치킨으로 유명한곳이었다.
'그래 죽으란법은 없지 오늘 힘들겠지만 두개라도 하고 들어가자'
들어가 보니 아직 음식이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근데 픽업을 누르려고 보니, 피자 세트가 아닌가?
내 배달가방이 꽤 크긴 하지만 피자가 들어갈 리는 없다.
물론 들어갈 수는 있다.
하지만 피자는 한쪽으로 쏠려 둘이먹다 한명이 한명을 패죽일 피자가 되겠지만.
픽업 전이었기때문에 서둘러 취소를 누르고 사유에는 배달통 크기로 인해 픽업불가를 눌렀다.
정말 일이 크게 잘못된듯한 효과음과 함께 빨간 경고창이 떴다.
낮에 배달을 가려다가 배터리도 별로 없고 잠도 못잤고 픽업도 안되고... 차도 너무 많아서 돌아왔었다.
그때 커피 배달이 떴었는데 가방에 완충장치가 없어 캔슬을 했으니 2연속 캔슬이었던 셈이다.
또다시 20여분 픽업이 뜨지 않았다.
2연속 캔슬과 평일이라는 조건이 그런 환경을 만든것이다.
결국 1시간이 넘도록 첫 일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포기하고싶지는 않았다.
나는 아까 기다리던 장소를 경유해 시내로 나가볼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콜이 하나 떴다.
3700원짜리였는데 아마 얼마전 상장한 g 치킨이었던걸로 기억한다.
거리가 꽤 멀었고 내가 거기만은 피하고싶은 역 바로 아래의 터널을 지나는 곳이었다.
하지만 배민커넥트가 우리 지역에서 서비스하지 않았기때문에 나는 쿠팡이츠를 무조건적으로 의지해야만 했다.
'수락율을 초반에 많이 낮춰놓으면 힘들 수 있다. 그리고 저 터널을 한번은 지나가보면서 내가 공포를 없애야 한다'
치킨집 건너편에 그 지하터널이 있다.
나는 치킨을 받아들고 그 터널을 향해 갔다.
반대편 차도가 빨간불이었고, 터널 진행반향쪽으로는 차가 없었기 때문에 역주행을 한다면 그 터널에 아무 차도 없을거라 생각했다.
킥보드로 그 가파른 경사를 뚫으려면... 발로 치고 나가야 하는데 차가 있을땐 그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역주행을 하며 터널에 진입하려던 찰나, 안보이던 경찰차 마이크에서 삐이익 소리가 났다.
'아 씨발... 개좆됐네 배달 한번 하려다가 20번치 날려먹겠구만...'
킥보드 배달부의 열악한 환경을 측은하게 본건지, 관련 법규가 정비되지 않은건지 경찰분은 마이크로 역주행하지 마세요 라고 말하시고 후속조치를 하지 않으셨다.
나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터널로 내려가 열심히 땅을 딛으며 배달지로 향했다.
배달지는 오피스텔이었는데, 동명의 빌딩이 존재해서 열리지 않는 잠금장치때문에 씨름을 하다가 손님과 통화를 하고 옆으로 향했다.
젊은 여자분이었는데 전화기 너머 들리는 소리로 보아 아마 남자친구와 함께 시켜먹는듯 했다.
배달을 한건 끝내고 내려가는데 엘레베이터에서 굳이 먼저 내리려고 문앞에 먼저 가는 중년 부부때문에 짜증이 났다.
서로 배려는 아니더라도 저런 병신같은 짓거리 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난다.
새로운 콜은 쉴틈도 주지 않고 떴다.
와플 고등학교 ㅋㅋ 였는데 문제의 터널은 지나도 되지 않지만 매우 혼잡한 역세권 방향이었다.
또한 그 옆의 속도가 빠른 도로를 지나쳐야 했고 픽업방향도 가는방향과 일치하지 않고 v자로 다시 되돌아와야 하는 곳이었다.
일명 똥콜이었다.
주행해야하는 거리가 대충 봐도 6km 이상이었다.
어쩔수 없이 가서 물건을 받았다.
킥보드로 배달을 하면 가방이며 전화기며 키며 이것저것 챙길것도 많고 일이 복잡하다.
그래서 배달지 앞에서 미리 가방을 벗어놓고 물건을 받아온다.
그때 사람들이 많이 신기하게 본다.
물론 절대 비웃거나 한심하게 보는것은 아니다.
그런데 괜히 그 순간이 멋쩍고 부끄럽게 느껴진다.
특히 가정환경이 나보다 나아서 여유롭게 보이는 20대 남녀가 그럴땐 좀 마음이 꽁깃하다.
와플 고등학교에서 물건을 받을때가 그랬다.
나는 음료를 고정할만한 완충재가 없어서 패딩을 벗어 최대한 흔들리지 않게 고정하였다.
그리고 그 모습은 좋은 구경거리였다.
티 한장 입고 추운 날씨를 뚫고서 배달지로 향했다.
정말 위험한 도로였고 배달지 주변은 슬럼가중에 슬럼가여서 찾기도 어려웠다.
헤메고 있을때 손님이 나오셔서 물건을 갖고 갔다.
잠시 숨을 돌리면서 이 먼곳에서 배달이 잡힐지 생각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왔던 곳 쪽에서 물건이 하나 잡혔다.
k할아버지 치킨이었다.
이윽고 나는 사고를 겪게 된다.
밤이라 인도주행(물론 하면 안된다. 이제 불법이다.)을 했다.
그냥 차도로 가도 되는데 이상하게 그때는 인도로 가고싶었다.
지쳐있기도 했고 무서움이 아직 좀 남아있었기 떄문이다.
안장이 평소 흔들리기는 했으나 이럴줄은 몰랐다.
아무도 없길래 속도를 내던 와중 안장이 갑자기 접혔고 나는 일어나지도 앉지도 못하는 자세로 판단해야만 했다.
'이상태로 정지할것인가 아니면 넘어질것인가'
만약에 저 자세에서 당황해서 악셀을 꽉 쥐었다면 최소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었을것이다.
나는 무의식적인 판단으로 악셀에서 손을 떼고 2초정도 속도가 줄어들때까지 기다린 후에 핸들을 옆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킥보드에서 내리면서 착지를 했다.
거의 40km로 달렸기 때문에 바로 착지할수는 없었고 달리기로 전환하면서 착지를 했다.
정말 말도안되는 수준의, 만화에서 나와도 좀 짜증날법한 방식이다 ㅋㅋ....
만약에 제대로 착지를 못했으면 최소 발목인대완전파열이고 넘어졌으면 어디 하나 부러질 가능성이 높았다.
더군다나 차도였다면 뒷차에 치일 확률은 100%가 아니라 101%였다.
나는 아킬레스건쪽에 충격을 느꼈고 순간 당황해서 멍해졌다.
하지만 배달을 가야 했고 쪽팔리기도 해서 쉬지 않고 바로 킥보드를 잡고 픽업지로 향했다.
가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킬레스건 쪽이 삔것은 오래 가기도 하고 돈도 많이 든다.
무엇보다도 일을 더 하지 못하게 되는것이 상심이 컸다.
먹고 살기 힘들고 좆같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전에 들은 말인데, 배달을 하면 사고가 나고 안나고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사고가 나고 죽을만큼 다치거나 별로 안다치거나의 문제라고 한다.
안다칠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빨리 사고가 날줄은 몰랐다.
고정장치의 이빨이 나가 덜렁거리는 안장을 이끌고 물건을 받아 갖다줬다.
내가 싫어하는 두번째 장소인 차가 많고 넓은 오거리 앞의 오피스텔이었다.
나는 더이상 일을 할수가 없었다.
사고의 충격으로 머리가 멍했고 무서웠다.
20분가량을 가만히 앉아있다가 집으로 왔다.
다음날 보니 장갑도 한쪽 잃어버렸고, 킥보드 전등도 깨져있었다.